
처음엔 다들 그렇게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부딪힌 게 가전이었다. 다들 오픈점이다, 백화점 상품권 행사다 말이 많아서 처음엔 지도를 켜고 무작정 돌아다녔다. 주말마다 대형 매장을 몇 군데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삼성스토어에 들어가서 상담을 받으면, 담당 매니저님이 엄청나게 상세한 표를 보여준다. 이게 소위 말하는 ‘견적’인데, 여러 품목을 묶어서 사면 할인율이 올라가고, 특정 카드를 쓰면 포인트가 얼마가 들어오고, 나중에 삼성멤버십 포인트로 돌려받는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처음엔 이걸 다 계산해보겠다고 엑셀까지 켰었다. 내가 바보였지.
견적서 종이 뭉치가 늘어날수록 흐릿해지는 본질
한 서너 군데 다녀오니까 손에 들린 견적서가 너덜너덜해졌다. A 매장에서는 냉장고를 강조하고, B 매장에서는 세탁기 건조기 세트를 세게 밀어준다. 가격은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구성이 달라서 비교하기가 정말 어렵다. 어떤 곳은 ‘삼세페’ 행사 중이라며 지금이 제일 싸다고 호언장담하는데, 돌아서서 생각해보면 그게 정말 최저가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냥 상담해주시는 분의 말솜씨와 친절함에 휘둘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냉장고가 시원하게 돌아가고 세탁기만 잘 돌아가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까지 숫자에 매달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조금 허탈하다.
매장 예약과 대기 시간의 굴레
어느 날은 굳이 예약을 하고 찾아갔는데도 매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매니저님이 오기 전까지 정수기나 인덕션 같은 걸 구경하며 서 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팠다. 매번 똑같은 설명을 듣고, 또 똑같은 포인트 혜택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상담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더라.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고민이나 하고 있는 나를 보는데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다. 가전제품 하나 고르는 게 이렇게 큰 프로젝트인가 싶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결국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지인들은 무조건 ‘가전은 발품이야’라고 했지만, 막상 해보니 발품이 아니라 그냥 ‘운’인 것 같다. 내가 갔을 때 어떤 프로모션이 걸려 있는지, 내가 상담받는 매니저님이 얼마나 실적이 급한지에 따라 최종 가격이 갈리는 느낌이다. 결국 우리는 가장 상담이 편했던 매장에서 2천만 원 중반대 정도의 예산으로 결정을 내렸다. 물론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하면 조금 더 비쌀 수도 있겠지만, 설치 날짜 맞추고 배송 이슈 걱정 안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더 싼 곳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 알아보기 싫어서 그만둔 게 더 크다.
설치 날의 소소한 기억들
배송해주시는 기사님들이 오셔서 좁은 아파트 현관을 끙끙대며 가전을 옮기시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날씨가 엄청 더운 날이었는데 땀을 뻘뻘 흘리시는 모습을 보며 ‘이게 싼 가격에 산다고 다 좋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기사님들 고생하시는 거 보면서 팁이라도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 몇 개 꺼내 드린 게 다였다. 가전이 다 들어오고 나니까 집이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긴 한데, 아직도 이게 잘 산 건지, 더 아낄 수 있었던 건지 가끔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말이다.
견적서 표를 보면서 복잡한 계산까지 하셨다니, 정말 정신없는 시간이었겠네요. 특히 오후 5시 넘어가면 저도 비슷한 고민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