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서 느낀 묘한 기분

강남 한복판에서 느낀 묘한 기분

서류뭉치와 묘한 긴장감

강남역 근처 어느 빌딩에 들어갔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다. 그냥 사무실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로비부터 무슨 고급 호텔 라운지처럼 꾸며져 있어서 괜히 옷차림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더라. 결정사를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순전히 친구의 등 떠밈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하도 결정사를 통해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나만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데이팅 앱은 이제 너무 질리고, 소개팅은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니 결국 이런 곳까지 오게 된 셈이다.

상담 실장님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그런데 그 친절함 속에 묘하게 나를 평가하는 시선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내가 가져간 서류들을 훑어보는 모습이 마치 대입 면접 때 교수님들을 대하는 기분과 비슷했다. 직장, 연봉, 부모님 환경 같은 걸 읊조리는데, 내가 이런 조건들로만 정의되는 사람인가 싶어서 기분이 묘했다. 상담료는 없었지만, 나중에 가입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수백만 원대는 훌쩍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확 들더라. 대략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를 오가는 비용이라니, 이 돈이면 차라리 여행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효율성이라는 단어의 무게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 실장님은 ‘효율성’을 강조했다. 당신이 원하는 조건의 사람을 이 시스템 안에서는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시간은 금이고, 나도 이제 서른 중반을 넘어가니 이것저것 재고 따질 여유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기계적인 필터링으로 완성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학벌, 재산, 키 같은 항목을 체크리스트처럼 적어 내는데, 그 종이를 채우는 내 손이 좀 떨렸다. 이렇게까지 해서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비슷한 시기에 데이팅 앱도 깔아봤는데, 거기서는 너무 가벼운 만남만 오가서 질렸고 여기는 너무 무거워서 숨이 막힌다. 중간 지점은 없는 걸까. 강남역 근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지나가는 커플들을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저들은 대체 어떻게 만났을까. 굳이 이렇게 큰 비용을 지불하고, 서류로 검증된 사이가 아니면 더 이상 진지한 관계가 불가능한 시대가 온 건지.

주말 오후의 씁쓸한 생각

결국 가입비 결제는 미뤘다. 상담받고 나오면 바로 계약할 줄 알았는데, 막상 문밖을 나서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더라. 부모님께는 그냥 지인 소개받으러 나갔다 왔다고 둘러댔다.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이 주는 어떤 ‘확실함’이 주는 안도감과,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비인간적인 서늘함 사이에서 아직 갈팡질팡하고 있다. 3번 정도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기본 패키지가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니면 그냥 돈만 날리는 경험이 될지 아무도 장담해주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가입했냐고 묻는데, 아직 고민 중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친구는 ‘한 번 해보면 별거 아냐’라고 답했지만, 나는 별거 아닌 게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보다, 이런 시스템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 무거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말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딱히 큰 진전도 없이 마음만 좀 씁쓸해졌다. 다음에 또 가라고 하면, 그때는 진짜 결제를 할까 아니면 또 망설일까. 지금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댓글 1
  • 서류를 훑어보시면서 대입 면접처럼 조건을 말씀하시는 게, 어쩐지 마치 투자 설명회 같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