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나 만들어볼까 하고 어플을 깔았다가 겪은 피로한 일주일

동네 친구나 만들어볼까 하고 어플을 깔았다가 겪은 피로한 일주일

서른 중반에 갑자기 찾아온 고립감과 어플 설치

서른을 넘기고 나니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결혼을 하거나 육아로 바빠져서 주말에 편하게 불러낼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퇴근하고 혼자 맥주 한 캔 마시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어느 순간 거실 불을 켜는 순간 훅 끼치는 적막함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인터넷에 친구찾기사이트나 직장인 커뮤니티 같은 걸 검색해 보다가 결국 가장 접근하기 쉬워 보이는 소개팅어플들을 깔게 되었다. 요즘 다들 쓴다는 위피랑 아만다 같은 데이트어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동네에서 가볍게 커피 한잔 마실 동네 친구나 만들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어플을 다운받고 화면을 켜자마자 내 얼굴 사진을 서너 장 등록하고 직업이나 거주지 정보를 꼼꼼하게 입력하라는 창이 뜨는데, 여기서부터 약간 귀찮고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내 일상을 증명해야만 누군가와 대화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번거로웠던 프로필 승인 대기 시간

대충 휴대폰 갤러리를 뒤져서 작년 가을에 친구 결혼식 갈 때 찍었던 사진이랑 혼자 카페에서 찍은 셀카를 골라 올렸다. 프로필을 등록하고 나니 심사 중이라는 안내가 떴는데, 승인이 나기까지 거의 24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음 날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겨우 승인 완료 알림을 받았는데, 바로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플 내에서 상대방에게 대화를 걸거나 호감을 표시하려면 전용 재화인 젤리나 하트를 사야 했다. 그냥 무료로 매일 몇 명씩 추천해 주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공짜였지만, 먼저 말을 걸려면 결제가 필수적인 구조였다. 결국 결제창을 누르고 35,000원짜리 패키지를 결제했다. 돈을 쓰고 나니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돈을 썼으니 누구 한 명은 만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생겼다.

유료 결제 유도와 생각보다 높은 매칭의 장벽

매일 저녁 침대에 누워 한두 시간씩 화면을 쓸어 넘기며 프로필을 구경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대화 신청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인 경우가 허다했다. 상대방이 수락을 안 하면 내가 보낸 하트는 그냥 허공에 날아가는 셈이었다. 한 나흘 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서 결제한 돈만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짜증이 밀려왔다. 소개팅어플추천 글들에서 말하는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건 결국 어느 정도 필터링된 외모나 스펙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 같았다. 카톡소개팅처럼 주선자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프로필 글자 몇 줄과 사진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어필하는 건 한계가 뚜렷했다. 그러던 중 다행히 대전 둔산동 쪽에 산다는 동갑내기 여성분과 대화가 연결되었다. 어플 메신저로 며칠 동안 직장 얘기, 좋아하는 음식 얘기를 나누다 주말에 한번 얼굴이나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둔산동 카페에서 가졌던 어색했던 첫 커피 만남

약속 장소는 둔산동에 있는 비교적 조용한 개인 카페로 잡았다. 주말 오후라 카페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어플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대면하려니 엄청나게 긴장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진 속 인물을 찾는데, 다행히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나서 마주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플 채팅창으로 털털하게 얘기 나누던 것과는 달리 공기가 너무 무거웠다. 서로 직업이나 사는 곳 같은 호구조사를 가볍게 마치고 나니 대화가 뚝뚝 끊겼다. 침묵을 메우기 위해 억지로 대화 소재를 쥐어짜내는 내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1시간 반 정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가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오프라인 소모임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묘한 피로감

예전에 나가봤던 대전 지역의 보드게임 소모임(대전동호회) 같은 오프라인 모임과 비교하면, 확실히 데이트어플은 목적성이 너무 뚜렷해서 대화의 유연함이 덜한 것 같다. 동호회는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친해지니까 어색한 침묵을 견뎌야 할 필요가 없었는데, 1대 1 매칭 어플은 오로지 서로를 평가하는 눈빛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니 피로감이 몇 배는 더 컸다. 결국 그분과는 그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카톡 연락이 끊겼다. 어플에는 여전히 쓰다 남은 하트가 남아 있지만, 다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프로필을 훑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피로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냥 주말에 조용히 넷플릭스나 보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차라리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댓글 4
  •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니 긴장감이 엄청났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어플 사용을 잠시 멈췄던 기억이 나요.

  • 젤리나 하트를 사야 하는 게 좀 웃기네요. 진짜 낭만적인 만남 같기도 하고, 오히려 돈 때문에 어색해지는 상황이 생기다니.

  • 사진 올리다가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 같아요. 24시간이나 걸릴 줄은 몰랐어요.

  • 사진 보니까, 자기 프로필에 쓴 정보랑 실제 모습이 조금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뭔가 온라인 세상이랑 현실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