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식 2부 순서를 굳이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남들은 다 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리스트에 올리게 되는 항목들이 있다. 내게는 2부 피로연 드레스가 딱 그랬다. 본식 때 입는 무겁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예식장에서 대여를 해주지만, 하객들에게 인사하러 돌아다닐 때 입을 옷은 알아서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단정한 원피스나 정장을 입으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이나 결혼 카페를 조금만 훑어봐도 다들 2부 드레스를 따로 대여하거나 맞춤으로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괜히 나만 너무 평범하게 입었다가 나중에 사진을 보고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친구는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했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전문 대여점을 예약해서 다녀왔다고 했다. 다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나도 서둘러 알아봐야겠다는 조바심이 났다.
인터넷 드레스쇼핑몰에서 첫 구매를 시도했다가 겪은 실패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역시나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온라인 드레스쇼핑몰 검색이었다. 굳이 하루 몇 시간 입자고 몇십만 원씩 쓰는 게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충 7만 원에서 9만 원 선이면 꽤 그럴듯해 보이는 화이트 톤의 레이스 원피스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인터넷 화면상으로는 모델들이 입은 모습이 그렇게 우아하고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르고 골라 한 쇼핑몰에서 85,000원짜리 미디 길이 드레스를 주문했다. 이틀 뒤에 택배가 도착해 신나는 마음으로 뜯어봤는데, 봉투를 열자마자 밀려오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화면에서 보던 촤르르 흐르는 실크 같은 느낌은 간데없고, 뻣뻣하고 얇은 중국산 저가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냄새가 진동했다. 지퍼는 뻑뻑해서 혼자 올리기도 힘들었고, 겨우 입어보니 가슴 품은 남고 골반은 꽉 끼는 해괴망측한 핏이 나왔다. 반품 배송비 6,000원이 아까웠지만 도저히 이걸 입고 어른들께 인사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 바로 반품 처리를 했다.
수원 인계동에 있는 피팅 룸을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인터넷 구매는 안 되겠다 싶어 직접 입어보고 고를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까지 가기에는 일정상 너무 번거로워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수원 쪽을 뒤졌다. 검색창에 수원2부드레스대여, 셀프웨딩드레스피팅 같은 단어들을 넣어보며 찾아낸 곳이 수원 시청역 인근 상가 건물 3층에 위치한 작은 예약제 드레스 숍이었다. 매장에 전화해보니 주말 피팅 예약은 이미 꽉 차 있어서 겨우 평일 퇴근 후 시간대인 저녁 7시 반으로 약속을 잡았다. 매장에 들어서니 행거에 뽀얀 드레스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는데, 베라왕드레스처럼 이름만 들어도 아는 해외 명품 브랜드 수준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인터넷에서 샀던 싸구려 원피스와는 원단 무게감부터 달랐다. 하지만 매장이 생각보다 협소했고 피팅 대기석이 좁아 먼저 온 손님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좁은 소파에 엉거주춤 앉아 기다려야 했다. 예약제인데도 앞 팀 스케줄이 밀려 대기 시간만 거의 35분을 허비하고 나니 피팅을 시작하기도 전에 피로가 몰려왔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입어본 드레스들의 미묘한 핏 차이
이곳의 피팅 규칙은 꽤나 엄격했다. 기본 피팅 시간은 딱 50분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최대 4벌까지만 입어볼 수 있었다. 직원은 친절하긴 했지만 뒤 타임 예약이 밀려 있는지 은근히 진행을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첫 번째로 입어본 머메이드라인의 실크 드레스는 몸매 라인을 꽉 잡아주긴 했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조여와서 피로연장에서 음식을 먹거나 걸어 다닐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입어본 잔잔한 비즈가 박힌 A라인 드레스는 디자인은 화사했으나 쇄골 라인의 레이스가 까슬거려 피부가 금방 붉게 올라왔다. 피팅룸의 강한 조명 아래서 거울을 보며 이게 예쁜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몸에 안 맞아서 불편한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남편은 옆에서 그저 다 괜찮아 보인다는 영혼 없는 대답만 반복하니 속만 타들어 갔다. 50분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대여 가격과 관리 비용을 따져보며 들었던 현기증
결국 가장 무난해 보이는 오프숄더 형태의 H라인 롱 드레스를 낙점하고 견적을 받았다. 대여 비용은 1박 2일 기준으로 25만 원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봤던 가격의 거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보증금 5만 원이 따로 필요했고, 혹시라도 피로연장에서 와인이나 소스를 흘려 오염이 발생할 경우 특수 세탁비가 추가 청구될 수 있다는 경고성 안내를 들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가격이면 그냥 백화점 브랜드에서 무난한 원피스 한 벌을 사서 두고두고 경조사 때 입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하지만 당장 예식 날짜는 다가오고, 마음에 드는 기성복 원피스를 찾아 백화점을 다시 돌아다닐 체력과 시간적 여유가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예약금을 이체했다. 돈을 쓰면서도 개운하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듯한 미묘한 찝찝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결국 피로연이 끝나고 옷장에 남은 애매한 흔적들
실제 결혼식 날 피로연 시간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하객분들께 눈인사를 건네고 테이블 사이를 지나다니느라 내가 무슨 드레스를 입었는지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드레스 자락이 의자 모서리에 걸려 찢어지거나 오염이 묻을까 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시부모님과 친척들께 인사드리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조마조마하기만 했다. 그렇게 1시간 남짓한 짧은 인사가 끝나고 탈의실에서 캐주얼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비로소 해방감이 들었다. 다음 날 부랴부랴 드레스를 반납하고 나니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통장에서 빠져나간 대여비 영수증만 뎅그러니 남았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 고생을 하며 피팅을 다니고 비싼 대여비를 내는 대신, 그냥 집에 있던 단정한 베이지색 슬랙스 슈트를 입고 피로연을 돌았을 것 같다. 남들의 시선에 휩쓸려 무작정 준비했던 일들이 결혼식이 끝난 지금 돌아보면 참 덧없고 아쉬운 결정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아있다.
인터넷 가격보다 훨씬 비싸긴 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서 더 공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