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인근의 어느 결혼정보업체 사무실
지난주 평일 저녁, 업무를 일찍 마치고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업체 상담실에 다녀왔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오니까 이게 은근히 압박으로 다가오더라. 사실 결혼 정보 회사라는 곳이 좀 차갑고 계산적인 곳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더 차분하고 묘하게 사무적인 분위기였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나 말고도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이 꽤 있어서 놀랐다.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겠구나 싶으니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고 그랬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창밖을 보는데, 퇴근길 강남대로의 인파를 보니 괜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등급을 매기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묘한 거리감
상담사분은 아주 친절했다. 그런데 그 친절함이 사람을 향한 게 아니라, 내가 제출한 서류와 스펙을 검토하는 데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연봉, 학벌, 직장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묻는데 마치 인사과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꿈꾸는지보다는 ‘시장에서 내 몸값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인하는 절차 같았다. 30대 중반인 남자 결혼 적령기라는 게 현실적으로 이런 수치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숫자로 치환된 내 삶은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고, 그게 조금 씁쓸했다.
가입비와 매칭 시스템에 대한 고민
상담 끝에 제시받은 가입비는 꽤 컸다. 대략 400만 원에서 600만 원 사이였는데, 이 돈을 내고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됐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소개팅을 보장해 준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주변에 골프 동호회나 러닝 크루 같은 사교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는 친구들도 많은데, 굳이 이렇게 큰돈을 들여서 만나는 게 맞는 건지 상담을 받는 내내 고민했다. 사실 대학생 때나 20대 초반에는 그냥 자연스러운 만남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 ‘자연스러운 만남’이라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확률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이 큰돈을 결제하는 순간, 정말로 내가 누군가를 ‘상품’처럼 골라야 하는 건가 하는 거부감이 들어서 당장 서명을 하지는 못했다.
소개팅 앱과 사교 모임 사이에서 느끼는 피로감
요즘은 헬스장이나 1인 골프 연습장 같은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편하다. 예전에는 동호회나 모임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웠는데, 이제는 새로운 사람에게 나를 설명하고 에너지를 쏟는 과정 자체가 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E라고 생각했던 내 성향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I로 변해가는 느낌이랄까. 사람을 만나는 게 즐거움보다는 과제처럼 느껴지는 때가 오니 결혼정보업체의 시스템이 일종의 도피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템에 기대기엔 내가 너무 계산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아직 덜 간절한 걸까. 상담실을 나오는데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졌다.
당장 무엇을 결정하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결국 누구를 만나게 될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정보업체에서 제안한 명단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막상 그들 중 누구와도 감정적인 교류가 시작될 것 같지는 않았다. 친구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모임에 나가다 보면 인연이 생길 거라고 말하지만, 그 모임에 나가는 것조차 이제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당장 업체를 통해 가입할지, 아니면 그냥 다시 골프 연습장에 나가며 생각을 정리할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쩌면 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집에 와서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한 캔 따서 마셨다. 오늘 상담은 그냥 인생의 한 장면을 들여다본 걸로 만족해야 할지, 아니면 진짜 시작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