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계약서만 서랍 속에 남겨두게 된 결혼정보회사 방문기

결국 계약서만 서랍 속에 남겨두게 된 결혼정보회사 방문기

엄마의 권유로 방문하게 된 강남 테헤란로 결혼정보회사 상담실

명절마다 친척들이 모여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어볼 때만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주말마다 침대에 누워 OTT 서비스만 돌려보는 일상이 반복되자, 엄마가 보다 못해 결혼정보회사에 한 번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굳이 돈까지 써가며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포털 사이트에서 결혼정보업체 순위나 결혼등급표 같은 단어들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그렇게 예약을 잡고 강남역 인근 테헤란로에 있는 한 결혼정보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웅장한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사무실 로비로 들어서는데 묘하게 주눅이 들었다. 상담실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아주 좁은 방들로 쪼개져 있었고, 은은한 조명 속에서 대기하는 동안 괜히 손톱만 만지작거렸다. 이윽고 매니저가 들어와 자리에 앉았는데, 첫인상은 우아했지만 내미는 가입 신청서는 아주 차갑고 구체적이었다. 내 학벌, 직업, 연봉은 물론이고 부모님의 자산 상태와 노후 대비 여부까지 꼼꼼히 적어야 하는 칸들을 채우면서 내가 하나의 상품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몰려왔다.

가입비 삼백오십만 원 결제와 가입 심사 서류 제출 과정

원하는 이성 조건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자 매니저는 현실적인 벽을 짚어주었다. 내가 바라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요즘 결혼 시장에서 가장 만나기 어렵고 몸값이 높은 부류라는 설명이었다.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가장 기본적인 미팅 5회 보장 프로그램이 350만 원이었고, 만남의 횟수나 상대방의 프로필 수준이 올라갈수록 500만 원, 혹은 그 이상으로 비용이 껑충 뛰었다. 일시불로 결제하기엔 부담스러워서 신용카드 3개월 할부로 350만 원을 긁었다. 사인을 하고 나오는 길에 영수증을 쳐다보는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은 후회가 들었다. 가입 절차는 결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학 졸업증명서와 재직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까지 떼서 팩스로 보내야 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도 귀찮았지만, 내가 살아온 이력들이 하나하나 문서로 증명되어 타인에게 평가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불쾌감을 주었다. 이 모든 인증을 거쳐 가입이 완료되는 데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대형 업체인 듀오와 가연을 비교하며 결정했던 선택

가입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듀오와 가연 두 곳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가입비나 매칭 방식은 대동소이해 보였지만, 인터넷 카페의 후기들을 보면 매니저의 밀착 관리 수준이나 보유한 회원 수에서 차이가 난다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하지만 직접 상담을 받아보니 결국은 나를 담당하는 매니저와의 궁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듀오는 규모 면에서 확실히 체계적인 느낌이었지만, 가연 상담 매니저가 내 성향을 더 잘 파악해주는 듯한 말솜씨에 끌려 결국 가연을 선택하게 되었다. 결제 이후 첫 프로필을 받기까지는 3주가 넘게 걸렸다. 가입만 하면 바로 주말마다 만남이 잡힐 줄 알았는데, 담당 매니저는 바쁜지 내 연락을 피하기 일쑤였고 매칭 진행 상황에 대해 먼저 물어보지 않으면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초조함과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 강남역 카페에서 진행된 첫 번째 매칭 만남

기다림 끝에 매니저가 보내온 프로필을 수락했고 첫 만남 일정이 잡혔다. 약속 장소는 일요일 오후 두 시, 강남역 인근의 다소 한산한 카페였다. 매니저가 미리 예약해둔 자리라 헤매지는 않았지만, 약속 시간 오 분 전에 도착해 기다리는 내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상대방은 IT 계열 대기업에 다닌다는 서른다섯의 남성이었는데, 프로필 사진에서 보았던 이미지보다 훨씬 마르고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한 뒤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서로의 나이, 직업, 거주지 같은 기본 정보를 다 알고 만난 상태다 보니 오히려 대화가 겉돌았다. 주말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최근에 본 영화는 무엇인지 같은 형식적인 질문들만 오갔다. 대화가 뚝뚝 끊길 때마다 어색한 침묵을 메우려 애쓰다 보니 한 시간 반 만에 기운이 완전히 빠져버렸다. 서로 예의는 차렸지만 이 만남이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횟수 차감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과 매니저 피드백의 한계

만남이 끝난 그날 저녁, 담당 매니저에게 어땠냐는 연락이 왔다. 상대방과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았고 성향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피드백을 주자, 매니저는 다음에는 좀 더 활동적인 성향의 분을 찾아보겠다며 사무적으로 응대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모바일 앱을 통해 미팅 횟수 1회가 차감되었다는 알림이 떴. 한 번 만남에 약 70만 원 꼴의 가치가 날아간 셈이라 머릿속으로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심리적인 압박감이 엄청났다. 두 번째로 들어온 프로필은 조건은 괜찮았지만 종교적인 요구 사항이 있어서 거절했고, 세 번째 만남은 약속 당일 상대방이 회사 급한 일로 연기를 요청해 일정이 미뤄지면서 김이 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세 번째 상대 역시 대화 내내 본인의 자산 현황과 아파트 청약 이야기만 늘어놓아 숨이 막혔다. 매 회차마다 돈의 무게가 느껴지니 만남을 결정하는 과정이 즐겁기보다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니저는 갈수록 내 취향을 고려하기보다 남는 카드를 기계적으로 던져주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남은 횟수를 남겨둔 채 보류 상태로 남겨진 계약서

다섯 번의 기회 중 세 번을 사용한 시점에서 나는 매칭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 매주 모르는 사람을 만나 억지스러운 공통점을 찾고 평가받는 과정이 내 정신 건강에 너무 해롭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구석에 밀어 넣은 계약서 봉투가 눈에 밟힌다. 남은 횟수를 환불받을까 고민하며 위약금 규정을 찾아보았지만, 중도 해지 시 공제되는 금액이 너무 커서 사실상 환불받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래도 비싼 돈을 치렀으니 끝까지 채우는 게 이득이라고 말하지만, 그 카페 안에서의 숨 막히는 공기와 어색한 대화를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결혼정보회사라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확실한 성혼의 지름길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내 조건의 한계와 감정의 소모만 확인시켜 준 씁쓸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남은 두 번의 기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여전히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어떤 날은 그냥 다 포기하고 아까운 가입비는 잊어버리자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피 같은 삼백오십만 원을 이렇게 날리는 게 맞나 싶어 속이 쓰리다. 엄마는 매번 만날 사람 없냐고 넌지시 물어보시는데, 나는 대답을 피하며 방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결국 결혼이라는 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자연스럽게 호감을 쌓아가는 일인데, 조건표를 들고 거래하듯 만나는 방식은 나처럼 소심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던 것 같다.

댓글 4
  • 프로필 업데이트를 몇 번이나 할 뻔했어요! 꼼꼼하게 준비하려다 시간 끌어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커진 것 같네요.

  •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서류 준비 때문에 오히려 더 번거로워진 것 같아요.

  • 프로필 사진이랑 실제 모습이 좀 달라서, 첫 만남에서 바로 느낌이 왔어요.

  • 강남역 카페에서 만났던 분, 프로필 사진이랑 실제로는 좀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게 흘러가는 걸 보면서, 정보만 정리된 상태에서 만나는 건 또 다른 어려움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