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박람회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대구 박람회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박람회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위축감이 들었다

지난 주말이었나, 대구에서 열린 웨딩 박람회에 다녀왔다. 사실 딱히 결혼 계획이 구체적으로 잡힌 건 아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나둘씩 가기 시작하니까,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박람회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엄청나게 화려한 조명과 예복들, 그리고 팜플렛을 든 상담사들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좀 압도당했다. 입구에서 상담카드를 작성하라는데, 내가 뭘 적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니까 직원이 너무 친절하게 다가와서 더 부담스러웠다. 그냥 구경하러 온 거라 대충 둘러보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상담사들은 이미 나를 예비 신부처럼 대우하며 어디 호텔이 좋은지, 촬영은 어디서 할지 정보를 쏟아냈다. 그들의 눈빛에는 ‘당신은 오늘 계약해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결정사 상담을 받으러 강남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박람회를 보고 돌아오니 더 생각이 많아졌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이제 결정사, 그러니까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한 번씩은 받아본 모양이다. 어떤 친구는 강남까지 가서 소위 말하는 상류층 전문이라는 곳에서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가입비만 수백만 원이라는데, 거기서는 사람을 조건으로만 나열해서 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게 사람을 만나는 건지, 아니면 회사에서 물건 스펙 비교하듯이 점수를 매기는 건지 싶어서 말이다. 그래도 결혼을 하려면 그렇게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인 건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소개팅도 한계가 있는 나이인 것 같고, 이렇게 박람회나 결정사 정보를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가끔은 낯설게 느껴진다.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만나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결혼은 일종의 프로젝트 같아진 느낌이다.

대구 커플링 가게에서 느꼈던 미묘한 거리감

박람회 다음 날에는 시내에 있는 커플링 가게에 혼자 들어가 봤다. 예전에는 연인이랑 같이 가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요즘 어떤 디자인이 유행하는지 궁금해서였다. 근데 막상 들어가니 직원분이 ‘남자친구분은 왜 안 오셨냐’고 물으시더라. 그냥 친구 거 봐주려고 왔다고 둘러대긴 했는데, 그 순간 괜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300만 원대 커플링을 보면서, 이걸 내가 나중에 누구랑 맞추게 될지, 아니면 진짜 안 맞추고 혼자 살게 될지 불현듯 상상이 안 되더라. 가게 안은 따뜻하고 예뻤지만, 내 마음은 왠지 모르게 서늘했다. 대구 번화가 한복판인데도 왠지 나만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결혼에 대한 확신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게 문제일까

주변을 보면 결혼해서 아주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또 금방 갈라서서 다시 혼자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어제는 우연히 TV에서 이혼한 연예인이 나와서 친구를 잃은 느낌이라고 말하는 걸 봤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진짜 친한 친구를 잃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겁이 덜컥 났다. 예전에는 결혼이 인생의 정답인 줄 알았는데, 요즘은 그냥 개인의 선택일 뿐인 것 같다. 근데 그 선택이라는 게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20대랑 결혼하는 남자 연예인 기사를 봤는데, 30대인 내 입장에서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결혼 시장이라는 게 연령에 참 민감하구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을 매일 반복 중이다

결국 박람회에서 받은 팜플렛은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상담받으면서 받았던 커피 쿠폰만 쓰고, 상담사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던 내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니면 누군가를 어디서 만나야 할지 전혀 정리가 안 된다. 그냥 오늘 하루를 별일 없이 보내는 게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자꾸만 사회 분위기가 나를 어딘가로 밀어 넣는 것 같다. 내일은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다. 아니면 오늘처럼 그냥 생각만 하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주말을 다 보낼지도 모르지.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바뀌는 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바쁜지 모르겠다. 일단은 오늘 밤까지만 이 고민을 좀 내려놓고 싶다.

댓글 4
  • 결정사에서 상담받는다는 게, 마치 큰 회사의 인재 채용처럼 느껴지네요.

  • 상담사님들이 너무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저도 결혼에 관심은 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생각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 팜플렛을 든 상담사들의 정보 쏟아내림이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느껴졌어요. 예비 신부라는 느낌이 자꾸 부담되더라고요.

  • 직접 방문했을 때 그런 느낌이 확실히 다르게 들 것 같아요. 전시회에서 보는 것과 실제 제품을 만져보고 대화하는 경험은 다른 차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