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카페에서 커플매니저와 상담하다가 느낀 묘한 기분

강남역 카페에서 커플매니저와 상담하다가 느낀 묘한 기분

가입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서른 중반이 넘어가니 주변에서 하도 성화라 강남에 있는 한 결정사 사무실을 찾았다. 사실 결정사라는 곳이 처음이라 꽤 긴장했는데, 상담하러 들어간 방은 생각보다 고급스럽고 조용했다. 커플매니저님은 아주 차분하게 내 이력서를 훑어보더니 내 직업이나 조건이 노블급 멤버십에 적합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입비였다. 보통 5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까지 부르는데, 이게 맞선 횟수 제한까지 있다고 하니 뭔가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묘했다. 상담받는 내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나’ 싶어서 괜히 등 뒤가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냥 일반적인 소개팅 앱이나 지인 소개로 만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시스템인 건 알겠는데, 돈을 내고 사람을 고르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꽤나 낯설고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프로필 사진 때문에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상담 이후 제일 큰 관문은 프로필 사진이었다. 담당 매니저님이 되도록 스튜디오에서 찍은 깔끔한 사진을 원한다고 해서 20만 원 정도를 들여 급하게 예약하고 촬영을 마쳤다. 거울 속의 나는 누가 봐도 정갈한데, 사진으로 보니까 왜 이렇게 낯선지 모르겠다. 평소에 친구들이랑 편하게 웃고 떠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정사 DB에 올라갈 법한 전형적인 ‘조건 좋은 사람’의 모습만 남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 만족을 위한 허영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진을 제출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마음이 찜찜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메일함을 수시로 새로고침 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애처로워 보였다.

첫 맞선 장소는 늘 가던 그 호텔 라운지였다

첫 맞선 장소는 강남역 인근의 꽤 유명한 호텔 라운지였다. 결정사 매니저가 지정해 준 곳인데, 가보니 왠지 옆 테이블도 다 맞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서 커피를 한 잔 시켰는데, 그 호텔 커피 가격이 2만 원이 넘었다. 괜히 비싸게 느껴져서 목이 메었다. 상대방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들어왔는데, 사진보다 실물이 조금 더 경직되어 보여서 첫인상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장거리 연애를 선호하느냐 아니냐 같은 시시콜콜한 질문들이 오갔고, 대화의 내용은 대체로 서로의 직업 안정성과 부모님 관련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감정이 오가기보다는 서로의 스펙을 검증하는 시간 같아서 왠지 모르게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화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이 허전했다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마치고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나름대로 깍듯하게 대했고 상대방도 예의를 차렸지만,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매니저에게서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하니 다음 만남을 조율하자’는 문자가 와 있었다. 거절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끌리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답장했는데, 이게 맞나 싶다. 6월의 무더위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마음이 허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이렇게 기계적으로 만나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게 정말 맞는 순서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받아야 할 텐데 벌써부터 피로감이 밀려온다.

댓글 4
  • 처음 느껴보는 그런, 씁쓸한 현실이어서 좀 그랬네요. 특히 가입비 때문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 사진 촬영 후에 찜찜한 마음이 느껴져요. 저도 어색한 사진 때문에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 프로필 사진 때문에 고민이 많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순간은 정말 난감한 것 같아요.

  • 500만 원 이상이면,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겠네요. 저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