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12번 출구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에 다녀왔다. 친구가 요즘 세상에 누가 그런데를 가냐고 핀잔을 줬지만, 막상 주변에 소개팅해줄 사람이 씨가 말라버린 상황이라 마음이 급해진 건 사실이다. 예약 잡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전화 너머의 상담사는 참 나긋나긋했는데, 막상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특유의 차가운 공기가 확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어서 손에 땀이 났다.
상담비는 따로 없었지만 가입비 이야기가 나오니 현실감이 확 들었다. 기본이 몇백만 원 단위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입비가 300에서 많게는 500만 원까지도 간다는데, 그 돈을 내고서라도 정말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통장에 있는 잔고가 먼저 생각났다. 상담사는 내 프로필을 보면서 ‘이 정도 조건이면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말했지만, 그게 그냥 영업용 멘트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의 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곳에서 제시하는 시스템은 참 체계적이었다. 등급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학벌이랑 연봉, 직장 규모를 따져서 데이터베이스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인공지능이 매칭해주는 것보다야 사람이 해주는 게 낫지 않겠냐며 상담사는 덧붙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내가 고작 이런 정보값으로 분류되는 건가’ 싶은 씁쓸함이 올라왔다. 소개 횟수는 6개월에 5회 정도로 제한되어 있는데, 한 번 만남에 십수만 원을 태우는 셈이다. 이게 효율적인 건지 아니면 그냥 비싼 수수료를 내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상담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짝을 잘 찾아서 다니는 것 같은데, 나만 돈 주고 사람을 만나려고 기웃거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는 다들 노블레스니 뭐니 해서 화려한 후기만 봤는데, 막상 현실은 사무실 서류 더미랑 상담사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특히 ‘성혼 사례금’이라는 개념이 따로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입이 떡 벌어졌다. 결혼까지 하게 되면 또 얼마를 내야 하는 건지. 시작도 안 했는데 비용 걱정부터 앞서는 게 참 한심했다.
오클라호마였나, 옛날에 어디선가 들었던 뮤지컬 제목 같은 느낌의 매칭 시스템을 설명해주는데,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냥 빨리 집으로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정말 행복해지는 건지, 아니면 그냥 조건 맞는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는 건지 혼란스럽다. 주변에서는 다들 자연스러운 만남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런 만남은 20대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처럼 들린다. 30대 중반이 넘어간 지금, 이런 삭막한 사무실에서 내 가치를 평가받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결국 계약서에 서명은 안 하고 나왔다. 상담사가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며 명함을 줬는데,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아직 꺼내보지도 않았다. 가입을 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상담을 받고 나오니 더 복잡해졌다. 그냥 이대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군가 나타날까, 아니면 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검증된 사람을 만나는 게 미래를 위한 투자일까. 정답이 없는 문제라 그런지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게 되었다. 다음에 다시 연락이 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벌써 고민이다.